그 후 6국을 통일한 정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에 운하 사업을 벌여 상업을 크게 일으키고, 수·위·감을 설치하는 등 집권 초반은 무난했으나, 분서갱유사건을 일으키고 만리장성, 아방궁, 여산릉 등 수많은 토목공사와 그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무거운 세금, 세금을 안 내면 가차 없이 죽이는 엄격하고 복잡한 진나라 국법에 민심이반이 가속되고 있었음에도,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말년의 진시황은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 호녀가 낳은 호해가 동행을 요청하고, 호해의 스승 자격을 빌미로 환관 조고가 따라 나선다.
조고는 조나라(趙) 왕족 출신인 환관으로, 법률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렵고 방대한 진나라의 법을 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좋아 환관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고, 진시황은 몇 번의 암살시도에 누구와도 직접 만나지 않고 환관인 조고를 통해 정사를 처리했는데, 이는 환관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이때부터 진시황의 비서 노릇을 하며 부새령(옥새 담당) 겸 중거부령(어가 담당)을 맡는 등 권력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 중 진시황이 죽기 전, 맏아들 부소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지만, 조고와 승상 이사(李斯)가 결탁해서 유언을 위조해 호해를 2세 황제로 만들어 초반엔 둘이 좋았으나, 이사도 결국은 조고의 계략에 사형을 당한다.
오광과 진승의 난 속에서 조고의 횡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2세 왕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이사를 죽이고 스스로 승상에 오른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취미였는데, 그 이유란 것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횡포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사슴을 말이라 우기며 대신들을 윽박질렀던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일화다.
오광과 진승의 난이 도화선이 되어 항우와 유방이 관중에 들어오기 전 그가 옹립한 자영에게 죽임을 당하긴 하지만,조고는 진시황 사후에 권력을 잡고는, 환관이 된 복수심에 통일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조고하면 떠오르는 것은 ‘간신’이긴 하나 간신보다는 '역적', ‘역신'으로 봐야 하는 것은, 간신 짓으로 나라를 망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본인이 옹립한 왕을,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가족을 시켜 죽였기 때문이다.
조고의 악행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제일 큰 악행은 자신을 발탁하고 신임해 준 선대왕과 자신이 옹립하고 모시던 왕을 배신하고 죽인 것으로, 그런 고대 인물이 현대까지 소환되는 것은 배신은 안 된다는 교훈 때문일 것이다.
고대 법률이긴 하나 진나라의 방대한 법률에 능통할 정도로 머리는 좋았으나 신의가 없었고, 따르는 인재도 없었으며, 그간의 기록도 ‘간신’, ‘역신’ 등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을 보면, 강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악행만 일삼던 조고였기에, 정작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회한은 없이, 오로지 권력만 쫓던 부나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과 사위 등 가족과 함께 자신이 옹립한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려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조고는 ‘가족 사업’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것으로, 임명직권력의 정점까지 올랐으나 만족하지 못했고, 환관의 신분으로, 주변 도움 없이 가족과 스스로의 힘으로 왕이 되려다 실패한 조고를 보면,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 ‘제대로 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있다.
배신은 배신을 낳는다. 한번 배신한 자가 두 번 배신하지 말란 법은 없다. 표리부동한 ‘조고’는 오늘도 우리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조고’를 가려낼 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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