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들어, 일본의 동쪽 지방인 도쿄, 사이타마, 요코하마, 지바 등에서 12만여 가구와 건물이 불에 타고 무너지고, 이재민은 무려 40여만 명에 달하는 대형재난이 발생하는데, 이 재난이 ‘관동대지진’으로 불리는 1923년 9월 1일의 진도 7.2지진이었다.
지진으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자 당시 야마모토 내각은 계엄령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상황은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며 폭동의 양상으로 치닫고, 이에 야마모토는 “조선인이 높은 곳에서 동시에 뛰어 내리고 발을 굴러 지진이 발생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기 시작하자, 정부와 경찰, 군대와 자경단이 기다렸다는 듯,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준비한다.”는 유언비어로 화답하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관동대지진 후, 1938년 미국이 전범국인 일제에 대해 군수물자인 철강재와 항공유에 대한 수출금지를 하고, 자산동결과 결정적 숨통인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하자,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일제는, 이로 인한 내부 불만을 1941년 12월 7일 출근 시간에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는 것으로 돌파하려 한다.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은 동남아시아 유전지대 공략에 속도를 냈으나, 미국의 ‘일본 석유공급 전면차단’이 성공하자, 석유확보를 위해 진주만 공습까지 감행 하며 미국을 전쟁터로 끌어들인 일제는, 석유로 시작한 태평양 전쟁에서 석유 때문에 원자탄 2발로 종말을 맞는다.
1996년 BIS 자기자본비율 도입으로 일본은행들이 한국에 빌려준 부채를 회수하면서 시작된 IMF 외환위기가 사실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이권다툼에 한국을 희생양 삼았다는 앤드류 월터 교수의 칼럼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그 후에도 한반도를 향한 수많은 제재와 규제, 보복을 가했으며, 가장 최근은, 2019년 7월 4일부터 단행한 ‘일본의 대한민국 수출규제 초치’로, 이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한 2018년 10월의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내세웠으나 이후, ‘한국의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의혹’, ‘수출국으로서의 관리책임’이라며 계속 말을 바꾸고 있고, 여기에 일본은 조치 이유와 관련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일본의 해당 조치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으로,
이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라는 9.0의 지진과 이로 인한 원전 폭발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코로나19까지 터지자, 임진왜란과 진주만 공습, 관동 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 등 그 책임을 과거와 같이 외부로 돌리려 했던 것을 답습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은, 최근의 상황과 연계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일본 형 자본주의'·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기시다호' 정책 힘 받나
2021.11.01. 경향신문)
선거에서 이긴 집권당의 첫 번째 정책이 적기지 타격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敵 基地라 칭하는 나라는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ICBM과 핵을 보유한 중국?
아니면 중국처럼 핵으로 원거리 타격능력이 있는 북한?
답은 뻔하다.
‘화산과 지진의 대국’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의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그에 맞는 군사력까지 보유한 일본이,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自衛‘隊’를 ‘軍’으로 만들어,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분출하려는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저화산 분화로 생긴 경석에 日 원전도 비상
2021.10.28. kbs)
(10여년만에 일본 수도권 지진 강타…피해 상황은?
2021-10-08 서울신문)
(일본 이바라키현 북동쪽 규모 5.2 지진 발생
2021-11-01 부산일보)
그들의 내정에 曰可曰否 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 그들의 행태를 본다면 그 선택지가 어딘지 알만 하니, 대비는 충분히 해야 할 일이다.
주변국의 망언은 안중에도 없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정책’ 제시는 없이, 세 살 아이들도 하지 않을 이름으로 별명을 만들어 진흙탕 싸움에 골몰하는 꼴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
smspd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