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을, 지난주 정모 의원이, 동해상 독도앞바다에서 열린 한·미·일 해군군사훈련과 한·일 군사동맹에 대한 야당대표의 우려를 반박하며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되었고, 이후
“대한민국을 '미제의 식민지',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보는 것은 민주당의 자학사관"이란 글을 게재하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一見 그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이나, 당시 세계는 서양 등 열강의 서세동점이 한창이던 때라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공적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는 달리, 조선은 신미양요, 거문도 사건 등 각종 외세와 관련된 사건으로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으로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와중에, 민비마저 등장해선 무능한 이희를 조종하며 가렴주구(苛斂誅求)만 일삼으며, 정사는 돌보지 않아 백성들 삶은 피폐해져만 갔고,
신식군인과 구식군인 간 갈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진 임오군란도, 민비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구식군대의 봉기였고, 결과적으로 쇄국을 주도한 흥선대원군을 톈진으로 납치하는데 성공한 청나라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청의 선 넘는 횡포에 숨죽이고 있던 김옥균 등 일제의 지원을 받던 급진개혁세력들은, 갑신정변을 일으키며 청을 대신해 일제에게 수탈의 명분을 주게 된다.
군란과 정변을 겪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 민비와 그 세력은, 흥선대원군이 10년 비축한 혈세를 흥청망청 1년 만에 탕진하고도 돈이 필요하자, 관직을 돈을 받고 팔기 시작했으며, 고부군수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악질 관리들의 등장도 백성들 고혈을 짜던 민비의 가렴주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민비를 등에 업고 진령군이란 칭호까지 받은 무당과 그 무리들도 덩달아 날뛰자, 조선은 백성들 신음소리로 가득했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외세를 물리쳐야 한다는 외침이 커지며, 결국은 동학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러 화약과 밀약을 거치긴 했지만, 동학세력은 호남 대부분의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는데 성공하면서 주민자치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데,
집강소는, 1894년 동학군이 조선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후 호남 각 고을(邑·州)의 관아에 설치한 민정기관이었는데, 중요한 재판이 있을 때는 농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농민자치 기구이자 개혁기구로, 관민의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강구하고 행정사무까지 맡아 일을 처리하였으며, 군수나 현령·현감은 정부의 파견 관리이자 형식상의 자리에 그친, 농민자치를 상징하는 기관이었다.
이런 주민자치가 오래가지 못한 것은, 조선정부가 약속을 깨고 외세를 끌어들이면서인데,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제의 막강한 화력 앞에서 동학군이 ‘우금치 산마루’에서 학살당하며, 사실상 조선은, 영국·프랑스등과 전쟁을 치르며 조선에 전념할 수 없었던 청을 대신해 친일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며, 민비를 살해한 일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조선이 썩어 문드러지고 그래서 망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집강소를 운영할 정도로 조선 농민들의 개혁요구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며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나, ‘썩어 문드러진’ 것은, 민비와 민씨 일파, 무능한 고종과 일제를 등에 업은 을사오적 등 적극적 친일파들이었고, 이들의 맹활약을 방어하고 저항할 이렇다 할 수단이 없던 조선은, 이들에 의해 난도질당하기 시작한다.
pd수첩의 ‘친일파는 살아있다’, kbs 시사기획 창의 ‘끈질긴 친일’, ‘한강’, ‘곱게 자란 자식’ 등의 프로그램과 작품들, 민·문·연등의 사료를 보면, 일본 순사나 헌병보다 자신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던 이웃출신의 일제 앞잡이가 더 무섭고 악랄했으며,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충성경쟁은 몸서리 칠 정도로 잔인했다고 한다.
“鄭寅玨이 충남 공주군 계룡면장 재직 시,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업무, 군사원호업무, 여론 환기 및 국방사상보급 선전업무,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업무,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支那事變功勞者功績調書)에 이름이 올랐던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0. 05. 31 뉴스파고)
대약탈의 시대(대항해시대) 열강들의 논리가 그랬다.
총, 칼을 앞세워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태평양 등 힘없는 전 세계를 거침없이 쳐들어가서는, 닥치는 대로 남김없이 약탈하고, ‘민족자결주의’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면서 “네가 약해서 당한거야‘라는 약육강식의 가해자 논리를 내세웠다.
조선은 ‘썩어 문드러진 지배세력’과 적극적으로 ‘집강소’를 때려잡은 친일파들의 활약으로 일제와 전쟁한번 하지 못하고 나라를 넘기게 된 것이 정설로,
원균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소리가 기어 나오더니, 이젠 어쭙잖은 식민사관을 들먹이며 역사공부 제대로 하라며 국민에게 호통 치는 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전·작·권 없는 한국을, 미군 말 잘 듣는 일본의 휘하에 종속시켜 대중국, 대러시아 견제에 한국을 장기판 졸로 사용하려는 미국의 의도로, 한·일 군사동맹 획책은 불문가지 일본과 친일파의 기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단죄하지 못해서 미래가 없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연좌제는 반대하지만 보고 배운 친일의 내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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