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방송=조도환 기자/Lin jing zi 특파원] 일본 정부가 관동(關東)대지진 직후 발생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 "정부 내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사실상 수천명의 조선인 학살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관동 대지진 100주기를 앞둔 지난달 30일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 사실 관련 일본 정부의 개입은 없다고 말했다며,
재일교포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에도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는 등,
"반성과 교훈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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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고정 표기하겠다는 발표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尹정부에 대해,
다음은 ‘독도’를 양보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침묵을 지켰고,
이번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기록은 없다는 발표에도 침묵하고 있어,
尹통이 지난 방일 당시 기시다에게 주고 온 것이 무엇이냐는 의혹에,
어디까지 일본 편을 들 것이냐는 반발이 확산되고 있고,
尹통의 ‘오므라이스, 소맥’ 외교가 무엇을, 어디까지 양보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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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의 관동대지진 조선일 학살 사건 요약,
“관동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토(關東)지방에 매그니튜드 7.9, 최대 진도 7의 대지진이 발생한 지진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지진은 대규모의 화재와 해일, 토네이도로 이어지며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를 파괴했다.
일본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사망자 9만 9,331명, 행방불명 4만 3,476명, 가옥 전파(全破) 12만 8,266동, 반파(半破) 12만 6,233동, 소실 44만 7,128동, 유실 868동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지진 다음 날인 9월 2일 발족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 내각은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내각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 '조선인의 배후에는 사회주의자가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키고 이것을 구실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때문에 유언비어가 기정사실화돼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조선인 색출을 시작했으며, 전국적으로 조직된 3,689개의 일본인 자경단(自警團)에 의해 조선인 학살이 시작됐다.
이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더욱 선동하고 방조함으로써 우리 동포의 피해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당시 일본인에 의해 살해당한 조선인은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 의하더라도 2,500명이 넘고, 문헌에 따라서는 6,000명에서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이 혼란을 조선인들에게 우호적인 좌익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한 기회로 삼아, 노동운동가 히라사자와 게이시치(平澤計七), 사회주의 지도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부부 등 일본의 진보적 인사 수십 명을 검거해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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